전 생애에 걸쳐서.
문법 흘끗 째려보기를 실천했던 언어학자가 계신다.
바로, 이어령 선생님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책인 눈물 한 방울에서도.
그는 맞춤법과 씨름했다고 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많고 많지만.
그래도 한 가지를 꼽으라 하면.
이 얘기를 말하겠다.
직선으로 사는 사람이 사선으로 사는 사람보다 항상 +의 생을 산다는 말.
+를 약간 기울여 보면 x가 되니까.
우리 삶은 +여야지 x가 되면 안되니까.
문법 흘끗 째려보기를 일상화 했던 언어학자인 그의 예리한 시각이다.
왜 사람은 떠나야만 하는가.
그러고 보면 이 생에 내려와서 숨 다하는 날까지.
빌려쓰지 아니한 것이 없다.
모든 걸 가지고 떠날 수가 없는 법이니까.
이 육신 마저도 100년 남짓한 세월 간 빌려 쓰는 것에 불과하다.
이런 허무감이 정신을 장악해 버렸을 때.
나는 거기서 또 빛을 본다.
문법 흘끗 째려보기에 온 힘을 다했던 이어령 선생님을 떠올리며.
그의 책을 뒤적이며.
인간에게 주어진 희망을 다시금 되짚어 본다.
책이 큼직하고 여백이 많아서.
그가 추구하던 삶의 매력이 어떤 건지 어림잡아 짐작할 수가 있다.
넉넉하고 여백어린 삶.
문법 흘끗 째려보기에 바빴던 젊은 시절은 그렇다 하더라도.
인생 후반기에서 그는 무얼 생각하고 또 곱씹었을까.
이어령 선생님의 마음을 살짝 들여다 보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책 안에서 마지막에 대한 언급이 많아서.
홀연히, 두렵더라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마침표를 찍고 싶어 하시던 이어령 선생님은.
지금 어디에서 무슨 고민에 빠져 계실까.
문법 흘끗 째려보기는 나에게도 벅찬 과제이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글을 무한으로 수정하고 싶어지는 게 사실이다.
고치고 또 고쳐도 고칠 구석이 수두룩하니.
이건 뭐 새 글을 쓰려면 주저함이 열정을 이겨버린다.
그리고 우리는 꾸깃꾸깃 접어 던질 수도 없는
모니터 앞에서 조용히 삭제 키를 연타하게 된다.
글쓰는 맛이 있다고 하던데.
키보드와 모니터에 익숙해진 요즘 사람들에게 얼마나 와닿는지는 알 수 없다.
쉽게 고치고 쓰는 세상에서.
손글씨의 가치는 어느 정도쯤 될까.
나는 글씨를 작게쓰는 나쁜 습관이 있다.
그것은 필경 내 마음의 그릇이 작기 때문일 것이다.
여백이 철철 넘치는데.
어찌하여 혼자 한계선을 그어버리고.
그 안에서 발버둥 치고 있는가.
심호흡하고 문법 흘끗 째려보기를 시도해 본다.
우리 사는 삶에도 법이 꼭 필요하듯이.
글에도 문법이라는 것이 있어 경찰관처럼 두눈 매섭게 뜬다.
어긋나는 부분을 삭삭 지워내 버린다.
빨간 줄이 가득 찬 종이를 손에 들고 벌벌 떠는 수밖에 없다.
이어령 선생님은.
마지막 책에 눈물 한 방울이라는 이름을 붙이셨다.
기쁨의 눈물일 수도 있고, 슬픔에 푹 절어버린 눈물일 수도 있다.
문법 흘끗 째려보기를 온 생에서 실천하셨던.
그 정신을 본받아서 참다운 글, 아름다운 글을 쓰고 싶다.
구겨 던져 버릴 수 없어서 고뇌한다던 그의 어깨를 두드려 드리고 싶다.
괜찮다고.
우리는 전문가가 아니지만 글을 제법 잘 쓰고 산다.
다만 예술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할 뿐이지.
예술이 생활이 되지 못하여 괴로울 뿐이지.
글과 고립되어 살 수 없을 뿐이지.
모두 괜찮다.
그런 말씀을 감히 건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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