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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큼발랄

우리 어무이 순백의 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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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가인을 사랑하는 울 어무이.

미스트롯이 한창 유행할 때의 이야기이다.

엄마는 글자를 특이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자신이 아는 범위 내에서 새롭게 단어를 조합한달까?

예를 들어.

미스 트롯이라는 단어가 생각이 안나서.

기존에 기억하고 있던 단어 롯데를 가져와서 조합한다.

그래서 미스 롯데라는 말도 안되는 말이 탄생 하게 되고.

미스트롯은 언젠가부터 엄마에게 미스롯데가 되었다.(ㅋㅋ)

기가 막힌 의사소통 장애가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송가인은 한번에 외울 수 있었다.

왜냐하면 한가인이 어무이 머릿속에 있었거든.

참으로 다행인 일이지.

자기가 좋아하고 맨날 보는 스타의 이름조차 기억할 수 없다면.

너무 슬픈 일이니까.

 

 

이어서 국민가수라는 프로그램이 했을 때도.

출연자를 너무나 좋아하면서도.

자막이 없으면 출연진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아 왜, 걔 있잖아]

국민가수라는 프로그램명도 잘 못 외우시는 것 같다.

나는 하루에도 어무이 표 스무고개를 잘도 넘는다.

[아, 국민가수에 나온 걔?]

[그래! 걔 노래 잘하는 애(?)걔 말야]

국민가수는 다 노래 잘하는 사람만 나오는 프로그램인데.

도무지 모르겠을 때는 이것저것 동원해서 말하는데.

문제는 나의 기억에도 오류가 있는 경우이다.

서로 다른 사람을 두고 떠올리며 얘기를 하는데.

또 그게 기가막히게 말이 통한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결국 서로는 다른 사람을 두고 실컷 말해놓게 되는 거다.

엄마는 박장현이 말하고 싶었는데.

나는 실컷 이병찬 얘기를 하고 있었던 경우도 왕왕.

 

 

이러한 엄마를 두고.

혹시 치매나 알츠하이머 초기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문제는 나도 똑같다는 거다.

그런 이야기가 있다.

깜박하고 아차! 한다면 아니고.

깜박하고서 완전히 잊어버린다면 위험 신호라는 말.

우리는 아직 1단계인 것 같다.

매번 머리를 싸매며 아차아차 거리니 말이다.

 

원래 엄마는 김범수 팬이었다.

발라드를 곧잘 들었는데.

언젠가부터는 음악을 TV로만 보시기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미스트롯2가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송가인과 더불어 양지은을 엄청 좋아하게 되었지.

그런데 여전히 이름을 기억 못하시고.

제주댁이라는 별칭만 기억하시는 모습은 여전히 짠하다.

그러고 보니 엄마의 회사 동료분들도.

다 무슨무슨 언니로 기억속에 저장된 것 같다.

그분들의 본명을 다 알고 있는 걸까?

의문이 들긴 하지만 사회생활이 이어지는 걸 보니 뭐.

 

내가 장난으로 엄마는 순백의 뇌를 가졌다고.

그렇게 놀린 적이 있다.

그러고 보니.

다른 사람 걱정을 할 때가 못되었다.

이 글을 쓰면서도.

가수 이름이 기억이 안나서.

포털에다가 이름을 검색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면서.

역시 유전자는 위대하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오늘도 엄마는 일하면서 송가인 음악을 흥얼대고 있겠지.

그래, 이름쯤은 기억 못해도 좋다.

엄마 기억속에 최대한 다양한 이름들이 저장될 수 있도록.

백업 데이터를 많이 확보해 드리면 되는 게 아니겠는가?!

언젠가는 자식들 이름도 이렇게 흩어지려나?

그런 생각에 이르고 나면 왠지 눈가가 시큰해 진다.

하지만 우리는 영원할 수 없는 존재.

언젠가는 세상의 모든 것들과 작별하는 순간이 온다.

내 기억들과의 싸움을 벌여야하는. 

오늘도 전쟁터에서 열심히 싸우고 있는 우리 어무이.

사랑한다 자주 말 못해도.

꼭 안아드리지 못해도.

사랑하는 마음은 여전한데 말이다.

오늘이라도 엄마의 손 주무르며 얘기를 나눠 봐야겠다.

미스롯데 시절 송가인이 그렇게 좋냐고 말이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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