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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큼발랄

천개의 바람이 되어(나무의 영원성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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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꿈을 꾼다.

천개의 바람이 되어 언젠가 자신이 저 멀리를 날게 될 날을.

비록 지금 여기 뿌리내리고 있어 움직일 수 없지만.

사계절 다른 모습으로 온몸을 바람에 부대낀다.

나뭇잎 한 장 바람에 휘날리면 어디까지든 간다.

어쩌면 생각보다 더 멀리까지도.

 

 

나무는 숨 쉰다.

천개의 바람이 되어 그를 쉴새없이 흔들어도.

굳건하게 그 자리에 뿌리박혀 있다.

그런 나무가 부러웠던 적도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온갖 자연현상에 시험당하는 그가.

애처롭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는 아무 말 없이 제 잎들을 풍성히 만드는데만 힘을 쏟았다.

변명도 불평도 하지 않았다.

 

 

나는 어떠한가.

매일 아무것도 생산해 내지 못하면서.

뭐가 잘났다고 그렇게 뽐내고 있는 걸까.

천개의 바람이 되어 사라질 운명을 짊어진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이렇게 기록하는 동안에도.

저 멀리 어딘가에서 너는 베어지고 쓰러져가고 있다.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너의 깊은 속도 모르고.

인간은 너를 이용할 생각만 가득이다.

 

대신 미안해 하고 싶다.

네 곁에서 오랫동안 숨 쉬고 싶다.

내가 뱉어낸 숨을 자양분으로.

네가 한 뼘 더 자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천개의 바람이 되어 너를 간질이고 싶다.

나무야, 하고 다정하게 불러 본 적이 있었던가.

네가 거칠거칠한 속살을 내보이며 아파할 때도.

네 곁에 나는 없었다.

너는 언제나 나의 곁에 있어 주었는데 말이다.

 

 

천년 만년 그 자리에서.

숨쉬고 자라나는 너의 영원성에 대하여.

천개의 바람이 되어 흩날리게 될 우리는.

한없이 너희를 그리워해야 할 운명인 거다.

등과 가슴 맞대고 호흡에 집중하면.

네가 끌어안은 벌레, 흙더미, 더운 숨이.

그늘과 휴식이 되어 내게 돌아 온다.

언제까지 아낌없이 주기만 할 것인가.

너를 걱정하는 내가 바보 같을지도 모르지.

 

이제는 한 걸음 쉬어가도 좋지 않을까.

천개의 바람이 되어 너를 훑고 지나가도.

너는 저항도 반항도 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할 뿐.

그런 우직함과 묵묵함을 배우고 싶었다.

내겐 너무 어려운 도전인 것 같다.

나무를 쓰다듬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나무에 기대면 근심이 쪼그라 든다.

너는 나를 만나 어떻게 변했고.

어떤 말이 더 하고 싶은지.

나는 정말로 궁금하다.

너는 말 없이 나이테만 깊어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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