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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큼발랄

분리수거꾼의 하루(나는야 타지않는 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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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분리수거꾼의 하루이다.

나 스스로를 타지 않는 쓰레기라고 칭해 보겠다.

20대 때만 해도.

분명 같은 쓰레기지만 타는 쓰레기였다.

그 때는 마구마구 장작을 지펴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소진하고 있었다.

그래서 활달했고 빛이 났었다.

지금은 타지 않는 쓰레기가 되어 그저 재만 날리고 있는 듯하다.

 

 

분리수거꾼의 하루가 다 그렇듯이.

소중한 꿈이 쓰레기가 되어버린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 한다.

이건 타는 쓰레기.

저건 타지 않는 쓰레기.

물론 그 안에 내 꿈도 포함된다.

이런 비슷한 내용을 담은 노래가 있었다.

일본 밴드 BUMP OF CHICKEN의 곡이었던 것 같다.

그들이 노래하는 소소한 가사는.

웅장한 밴드 사운드에 휩싸여 있었다.

별 볼일 없는 이야기를 정말 소중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밴드이다.

 

 

분리수거꾼의 하루를 뒤따라가 본다면 재밌을 지도.

그는 꿈의 조각을 모으곤 한다.

이미 꿈이 깨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조각에 발이 베이거나 할 수 있으므로.

소중히 집어다가 분리수거를 한다.

어째서 꿈이 분리수거가 되는가 하면.

꿈의 주인이 깨닫거나 다시 용기를 얻었을 때를 위해.

꿈은 분리수거 되었다가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오게 된다.

 

 

 

불연소 되는 운명을 탓하지 않으려 한다.

나는 아직 나를 활활 태울 만한 무언가를 찾지 못한 거라고.

혹은 찾았음에도 아직 시기가 덜 되었다고.

조금만 기다리면 내 꿈도 활활 타오를 테니 기다려 달라고.

하지만 그런 사정은 깡그리 무시한 채로.

분리수거는 시작된다.

매 주에 한 번씩 돌아오는 그 날이 두려워 피하려 든다.

꿈을 버릴 수는 없다고 울며 불며 매달렸던 시절은 갔다.

분리수거꾼의 하루가 서글펐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나는 쓰레기인가?

한 번 쓰고 접어두었다면 그건 쓰레기가 맞다.

하지만 내 인생 아직 한 번 밖에 쓰지 않았고.

접어두지도 않았다면 그건 쓰레기가 맞을까?

나를 한껏 겸양한 표현으로 봐서 쓰레기라고 지칭해도 좋을까.

그렇다면 나는 타지 않는 쓰레기가 되리라.

분리수거꾼의 하루 속에서도 빛나는 쓰레기가 되리라.

찬란한 쓰레기가 되어 분리수거 통에서 반짝반짝 빛나야지.

실은 어디에서거나 빛나고 싶었던 소중한 꿈이 박살난 채로.

 

 

가혹한 사회라는 체에 걸러진 나는.

어느덧 꿈도 희망도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타지 않는 쓰레기가 되어 분리수거날을 기다린다.

버려지기 위해서.

아니 어쩌면 나의 존재 가치를 알아챈 누군가에게 선택받기 위해서.

그래도 재활용이 가능하다고 어필하면서.

분리수거꾼의 하루를 들여다 보자.

거기에는 차마 활짝 피어나지 못한 수많은 젊은이들의 꿈과 사랑이 있다.

한 때 젊은이였던 사람의 꿈과 사랑도 있다.

그렇게 모에나이 고미가 되어버린 나.

어디서부터 열정을 되찾아와야 할까.

다시 모에루 고미가 되려면 어째야 할까.

모에모에 하고 싶어지는 하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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